한국소설 7

붉은 달 아래에서 | Beneath the Red Moon 8화|이름 하나로 흔들리는 권력

그 이름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 순간공기가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려앉았다.스르륵~보이지 않는 무게가공간 전체를 짓누르듯 퍼져 나갔다.정원덕.그 이름 하나로,사람들은 말을 멈추었고생각마저조심스럽게 눌러 담아야 했다.그는 사람이 아니었다.움직이지 않아도 흐름을 바꾸는 자,말하지 않아도 결정을 뒤집는 자.그리고서연은그 이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정원덕 대감.현 조정의 영의정.중전마마의 친부.그의 이름은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그것은하나의 권력이었다.툭~붓끝이 종이에 닿는 순간,법이 만들어졌고사각~사각~문서가 넘겨질 때마다조정의 방향이 바뀌었다.그의 말은 곧 명이었고,그의 침묵은 곧 승인과도 같았다.겉으로 드러난 그는청렴하고 단정한 대신.나라를 떠받치는 기둥처럼 보였다.그러나그 이면에는또 다른 기록이 존재하고..

붉은 달 아래에서 | Beneath the Red Moon 7화|감춰진 이름의 무게

그날 이후,그 사내의 시선은 더 이상 우연에 머물지 않았다.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은이제 확인해야 할 ‘기록’이 되어가고 있었다.그리고 그 기록은곧, 감춰진 이름으로 이어지게 된다.궁 안, 깊은 처소.창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바닥 위에 얇게 퍼져 있었다.그 사내는 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움직임은 없었지만생각은 멈추지 않았다.툭툭툭…손끝이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한 번,그리고 또 한 번.그의 머릿속에는오직 한 장면만이 반복되고 있었다.사람들 사이에서 마주쳤던 눈.그리고아이들 앞에서 웃고 있던 모습.그는 눈을 감았다.쿵쿵쿵.심장이 다시 반응했다.그는 그 감각을 무시할 수 없었다.이현은 참을수 없었다."여봐라!"“사람을 하나 찾고자 한다.”그의 낮은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앞에 서 있던 내시가 고개를 숙였..

붉은 달 아래에서 | Beneath the Red Moon 6화 | 달빛 아래, 다시 시작된 그리움

와아! 짝짝짝사물놀이의 마지막 장단이 끝나갈 즈음,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툭~ 쿵 스윽~서연과 사내 사이의 거리는숨결이 닿을 듯 가까워졌다가,다시 흐트러지기 시작했다.그때“아씨!”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다다닥!하인 달래 였다.달래는 서연의 팔을 붙잡았다.“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서연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사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하지만스윽사람들이 다시 그 사이를 채워 넣었다.그날,둘의 거리는 그렇게 끊어졌다.그날 밤.집 안은 평소와 같았지만,어딘가 달라져 있었다.서연은 마당에 서 있었다.은은하게 내려앉은 달빛이기와와 흙바닥 위를 고요하게 덮고 있었다.휘~익 사각~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서연은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았다.그 순간쿵.심장이 다시 한..

붉은 달 아래에서 | Beneath the Red Moon 5화 | 붉은 달 아래, 운명이 처음 마주한 순간

붉은 달이 떠오르던 밤,서연의 집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종이를 넘기는 소리조차 멈춘 듯했고,등잔불만이 아주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그 정적과는 반대로,집 밖에서는 바람이 낮게 울고 있었다.서연은 그날, 집에 홀로 남아 있었다.드물게 찾아온 고요한 밤이었지만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마치, 아직 닿지 않은 어떤 일이조용히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일정하게 흘러가던 시간과 달리,시장 안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여기 보시오! 갓 나온 떡이오!”“값은 이리하오 이리하오!”사람들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였다.발걸음은 바쁘게 오갔고,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연달아 이어졌다.사각 스윽종이 대신, 삶이 서로를 스치고 있었다.서연은 그 한가운데에서잠시 숨을 고르듯 멈춰 섰다.이곳에는 기록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

붉은 달 아래에서 | Beneath the Red Moon 3화|그 문이 집으로 들어오던 날

그 문은 원래부터 이 집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그날 이전까지,이 집에는 그런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그리고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그날 아침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낯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나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짐을 옮기는 거친 숨소리,익숙하지 않은 기척들이 집 안을 흔들고 있었다.나는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때내 귀에 익숙한 소리가 스며들었다.사각나는 숨을 멈췄다.그 소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소리였다.종이를 넘기는 소리.기록이 움직일 때 나는,그 조용하지만 분명한 마찰음.하지만 그 소리는사람의 손이 아닌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마당 한가운데,커다란 상자..

붉은 달 아래에서 | Beneath the Red Moon 2화|열려서는 안 되는 문

시간은 과거로 돌아간다.그날 밤 이전의 일들은,너무도 고요해서 오히려 숨이 막힐 듯했다.바람조차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고,집 안의 공기는 오래된 먼지처럼 가라앉아 있었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였지만,지금 와서 생각해보면그 고요함 자체가 이미 이상한 징조였다.나는 그때 그것을 알지 못했다.아침의 공기는 늘 비슷했다.이른 햇살이 기와 지붕 위를 타고 흘러내리며마당의 흙바닥을 희미하게 밝히고,밤새 식어 있던 공기가 서서히 따뜻해지는 시간.마당 한쪽에 놓인 오래된 항아리들 사이로바람이 스치며 낮게 울었고,대문 너머에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발소리가희미하게 번져왔다.집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너무 조용해서,내 숨소리조차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그날도 다르지 않았다.하지만그 소리만은 달랐다...

붉은 달 아래에서 | Beneath the Red Moon 1화|멈추지 않는 밤의 시작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고,안개는 모든 일을 덮으려는 듯 빠르게 스며들고 있었다.그 밤땅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두두둥~보이지 않는 무언가가,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말이었다.말이 미친 듯이 달렸다.거칠게 들이쉬는 숨이 폐를 찢을 듯했고, 손에 쥔 고삐는 땀으로 미끄러졌다.등 뒤에서는 밤공기를 찢는 소리가 끊임없이 따라붙고 있었다.휙~귀 옆을 스치는 날카로운 파열음.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이미 목숨은 끝났을 것이다.화살이었다.나는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돌아보는 순간, 속도가 늦어지고 그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말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거품이 입가에 맺히고, 발굽은 흙을 깊게 파헤치며 밤길을 갈랐다.이 길은 원래 이렇게 험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숲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길은 점점 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