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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 아래에서 | Beneath the Red Moon 5화 | 붉은 달 아래, 운명이 처음 마주한 순간

붉은 달이 떠오르던 밤,서연의 집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종이를 넘기는 소리조차 멈춘 듯했고,등잔불만이 아주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그 정적과는 반대로,집 밖에서는 바람이 낮게 울고 있었다.서연은 그날, 집에 홀로 남아 있었다.드물게 찾아온 고요한 밤이었지만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마치, 아직 닿지 않은 어떤 일이조용히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일정하게 흘러가던 시간과 달리,시장 안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여기 보시오! 갓 나온 떡이오!”“값은 이리하오 이리하오!”사람들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였다.발걸음은 바쁘게 오갔고,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연달아 이어졌다.사각 스윽종이 대신, 삶이 서로를 스치고 있었다.서연은 그 한가운데에서잠시 숨을 고르듯 멈춰 섰다.이곳에는 기록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

붉은 달 아래에서 Beneath the Red Moon 4화|아버지가 기록을 숨긴 이유

그날 이후,서연은 더 이상 그 문을 단순한 문으로 보지 않았다.집 안 가장 깊숙한 곳,햇빛조차 제대로 스며들지 못해 늘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그 공간에는분명 숨겨진 기록이 있었다.문 앞에는 오래된 나무 냄새와 함께,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먼지의 냄새가 희미하게 떠돌고 있었다.그리고 그 기록은결코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나는 그날 이후로 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아침 햇살은 여전히 기와 위를 타고 흘러내렸고,이슬 맺힌 마당의 흙은 은은하게 빛났으며,항아리 표면에는 햇빛이 반사되어 잔잔한 빛을 띠고 있었다.하지만 그 평온한 풍경과 달리,집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부엌에서는 늘 들리던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줄어들었고,하인들의 발걸음은 바닥을 ..

붉은 달 아래에서 | Beneath the Red Moon 3화|그 문이 집으로 들어오던 날

그 문은 원래부터 이 집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그날 이전까지,이 집에는 그런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그리고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그날 아침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낯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나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짐을 옮기는 거친 숨소리,익숙하지 않은 기척들이 집 안을 흔들고 있었다.나는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때내 귀에 익숙한 소리가 스며들었다.사각나는 숨을 멈췄다.그 소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소리였다.종이를 넘기는 소리.기록이 움직일 때 나는,그 조용하지만 분명한 마찰음.하지만 그 소리는사람의 손이 아닌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마당 한가운데,커다란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