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숨겨진 이야기 9화|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
그날 밤,
서연은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다.

붉은 달.
하늘을 가득 채운 붉은 빛 아래,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선만큼은 너무도 선명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서연은 꿈속에서 한 발짝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사각~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숨이 가쁘게 차올라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등잔불만이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서연은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또야…”
같은 꿈이었다.
몇 날 며칠째 반복되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꿈.
그저 기분 나쁜 꿈이라기엔,
너무 또렷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또한
점점 더 현실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날 낮.
서연은 이유 없이 발걸음을 멈췄다.
시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늘 다니던 길인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언가가…
자꾸만 시선을 끌었다.
서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멀리,
궁 쪽이었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유도 없이 가슴이 조여왔다.
“…왜 이러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선은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같은 시각.
궁 안 깊숙한 곳.
세자는 한 장의 문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각~
조용히 종이를 넘긴다.
그의 손이 멈춘 건,
아주 사소한 한 줄 때문이었다.
“서연.”
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기록이었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이름.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자는 다시 한 번 그 글자를 따라 읽었다.
“…서연.”
이름 두자 인데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흔들렸다.
바람이 스쳤다.
창이 아주 조금 흔들린다.
세자는 고개를 들었다.
이유 없이,
궁 밖이 신경 쓰였다.
보이지도 않는 어딘가에
시선이 붙잡힌 듯했다.
같은 순간.
궁 밖 골목.
서연의 옷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서연은 순간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았다.
분명
방금까지.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서연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
누군가와 스쳐 지나간 것 같은 느낌.
손에 닿을 듯 말 듯
아주 가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상해…”
작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발걸음은 다시 움직였다.
한편으로 며칠 전에 그 사내가 생각났다.

궁 안.
세자는 문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금 이대로 앉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시각,
궁 밖 골목 끝.
서연이 막 그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몇 순간 뒤.
세자가 그곳에 도착했다.
바람이 스쳤다.
아주 잠깐,
누군가가 있었던 흔적처럼.
세자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방금…”
낮게 중얼거린다.
분명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
골목 끝, 멀어진 자리에서
서연도 동시에 멈춰 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선은
끝내 닿지 않았다.
그날 밤,
붉은 달은 더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서로를 알지 못한 채,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다음 화-